2024년 7월 14일 / 예수님 편입니까? | 운영자 | 2024-0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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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는 어떤 상황을 두가지 구도로만 나누어 보려는 관점입니다. ‘이분법’이라고도 하는데, 선과 악, 내 편과 네편, 좌파와 우파, 강자와 약자, 도덕과 부도덕, 유죄와 무죄, 거짓과 진실 등으로 나누어 보려는 관점을 일컫습니다. 이 논리에서 조심할 것은 기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에는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흑백논리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사단 안에 있든지 둘 중 하나이며, 중간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혹자는 여러분에게 ‘신앙생활을 너무 깊게 하지 마라’, ‘지나침이 없이 적당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가져다 주는 생각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요한계시록 3:15-16). 오늘 본문에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니라”(눅11:23).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지만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기 때문에 나는 중립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제가 위급할 때 도와주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일전에 SBS ‘모닝와이드’에서는 버스가 화물차와 충돌한 상태에서 버스 기사가 핸들에 다리가 끼어 탈출하지 못한 위급한 상황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버스에는 불이 붙기 시작했고, 승객 7명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버스 기사는 핸들에 다리가 낀 상태가 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한 여자 승객이 손수건에 생수를 적셔 버스 기사가 연기를 마시지 않게 도와주었습니다. 여자 승객이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간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 출동한 견인차를 이용해 기사의 다리를 누른 핸들을 끌어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그 사이 버스 기사를 안전하게 버스 밖으로 탈출시켰습니다. 이후 3분 뒤에 버스는 완전히 전소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소방대원은 “3분만 늦었어도 목숨을 읽을 뻔한 상황이었다.”라며 생명을 구한 시민들의 협력을 칭찬했고, 사건의 주인공들은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여리고 성을 향해 내려가는데 혼자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레위인은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칩니다. 강도와 레위인과 대제사장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레위인과 대제사장과 강도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방관자가 되고, 구경꾼이 된다는 것은 실상은 악의 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흑백논리가 명명백백합니다. 방관자가 되고, 구경꾼이 된다는 것은 실상은 악의 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해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악된 세상에 빠져 점점 돌이키지 못할 곳으로 끌려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든지 죄악으로 빠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신앙의 중간지대, 회색지대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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