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4일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운영자 | 2024-0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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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5:1-9절 개역개정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으로 성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는 제물이 될 양이 들어가는 양의 문 근처에 있습니다. 그 “은혜의 집” 근처 행각에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유는 ‘베데스다’ 연못의 전설 때문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천사가 가끔 내려와 연못 물을 휘젓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도 치료가 된다는 전설입니다. ‘베데스다’는 간헐천으로 가끔 물이 솟구쳤습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두 가지의 전설이 가미된 것입니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휘젓는다는 전설과 이때 먼저 들어가는 병자는 치료가 된다는 전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전설은 사실에 근거한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성공주의’ 신념 가운데 다른 사람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야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믿음이 이 연못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믿음 곧 미신이 하나님의 성전 근처 ‘베데스다’에 있었습니다. 이 믿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쟁취하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남보다 먼저, 아무개 신자의 신앙생활과 견주어 더 열심히 더 많이... 이러한 경쟁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은 받은바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절에, 베데스다에는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등의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이 움직이면 ‘베데스다’는 시끄러워집니다. 만약 약효가 있다면 들어가는 사람 모두가 치료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치료받지 못합니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미신’ 그것은 어리석은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에서는 아무도 치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전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미신적인 것에 의지하면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리석은 믿음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베데스다’ 현장입니다. 오늘 본문에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 전설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여건을 가진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6절에서 예수님은 그가 병이 벌써 오래된, 치료 시기를 놓친 사람으로 진단하셨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사람. 바로 38년 된 병자입니다. 이 38년 된 병자에게 놀라운 일이 있게 됩니다. 병자가 누워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먼저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게 의지가 있느냐? 용기가 있느냐? 병자의 영적인 상태와 믿음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으셨습니다. 38년된 병자는 “나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원망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병이 오래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삶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는데 죄나 질병은 이런 관점에서 같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초기에 치료하지 못하면 죄와 친구가 되어 버립니다. 오늘 내게 예수님께서 내게 해결되지 않는 죄나 삶의 문제에 대해 지금 그것을 고치겠느냐고 질문해 오시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 내가 원하나이다. 지금 치료해 주십시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변명과 핑계를 할 것입니까? 38년된 병자와 같이 치료받고 싶다는 의지조차도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단 3개의 명령어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라” 그러자 병이 나아서 병자는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세상적 방법으로는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아는 것도, 믿은 것도 아닌데, 그분의 말씀만 듣고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를 맡겨 보십시오. 38년 된 병자의 깊은 병을 치료하시는 것 같이 우리 삶에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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