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주일 낮 예배 | 이찬영 | 2013-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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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13:14-18. 2013. 2. 10. 주일낮 설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을 떠나 내가 네게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땅 이름이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이 왜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창12: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받게 될 복 속에 그 곳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며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족속들과 나라가 하나님을 믿는 족속과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모든 족속과 나라들이 하나님을 믿는 족속과 나라가 되기 위해...(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2)아브라함이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신다고, 다시 말해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를 끝까지 인도하고 보호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인생들에게 복과 화를 나타내 보이실 것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고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아브라함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일관하는 중요한 대 전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터 위에 믿음과 순종은 복이요, 불순종은 곧 저주와 형벌이라는 것이 대 원칙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귀감이 되는 사람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머나먼 외국으로 싦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의 여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남북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산세와 지형은 본래 원형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산천은 의구하되...)참으로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을까? 큰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이스라엘 땅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돌이 많고 물이 적으며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습니다. 여리고가 그렇게 황량한 ‘그린 데져트’ 지역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유프라테스강을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왔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과 큰 갈등은 없었지만 그는 정착을 하지 못하고 점점 남방을 향해 내려가게 됩니다. 결국 이집트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낭패와 실망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올라온 아브라함은 마지막 혈육인 조카 롯과 헤어지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성경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롯과 헤어짐의 이유가 단순히 그들이 소유한 가축 떼가 너무 많아서라기 보다는 그 땅의 척박함이 그들의 소유를 감당할 수 없는 까닭에 헤어지게 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동쪽으로 가면 내가 서쪽으로 가고, 네가 서쪽으로 가면 내가 동쪽으로 가겠다.”고 우선권을 준 것은 대단한 배려였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양보였습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요단강 유역으로 물이 넉넉하였고, 마치 에덴동산과 이집트의 비옥한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당시의 아브라함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변의 종족들과 늘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하는 지금, 롯을 분가 시킨 것은 그만큼 세력이 분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내가 네 후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할것이니...이제 너는 일어나 이리저리 다니며, 그 땅을 사방으로 살펴보아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아브라함이 홀로 남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앞서 창12:1-3절에 약속하셨던 축복을 본문 창14-18절에서 “바라보아라, 다녀보아라, 확인해보아라”는 말씀으로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십니다. 공중에 새를 먹이시고 들에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 한가운데 대로를,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와 시원한 생수를 예비해두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가정, 교회와 민족를 위한 복을 예비해 주신줄로 믿습니다. 드디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 계획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왔고, 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동거는 거룩과 세속이 섞여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생활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혼합되어 있는 동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주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때 비로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획득되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짝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약4:4) 세속과 구별되지 않고는 성도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문명의 도시에서 척박한 가나안으로 이주해온 아브라함은 철저한 연단을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별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별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과 하나님을 택하고 속된 것과 세상을 버리는 것, 구습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결정은 하나님을 택하기 위해 물질적인 욕심, 양을 먹이기 위한 모든 유리한 조건들을 모두 포기한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희생 없이는 성별될 수가 없습니다. 아멘!!! 아브라함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다 예비해 놓으시고, 그 축복이 어떤 것인지 네 눈으로 구석구석, 빠진데 없이 한번 확인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 내 옆으로 스쳐가는 하나님의 축복을 못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축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내 가정 안에, 내 사업 안에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말씀 읽고 새김질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 건강, 자녀, 사업속에 예정하고 계신 축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는 것입니다. ‘다녀보라, 밟아보라’라는 말은 관찰로만 확인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축복하신 땅을 발로 걸어가면서 담대하게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거룩과 세속이 구별된 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그 후에 눈으로 동서남북을 살피고 확인하라고 말씀하셨으며, 확인한 다음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다녀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3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명히 구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속된 것, 세상것,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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