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주일 낮 예배 | 이찬영 | 2013-05-02 | |||
|
|||||
기드온과 300명 용사 (삿7:6-8) 2013. 3. 3. 주일낮예배.
창세기 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이고 그 후손들이 지금의 아랍인들입니다. 창세기25장에 보면, 사라가 죽고 나서 아브라함은 ‘그두라’ 라는 여인을 통해 여러 명의 자녀를 얻게 됩니다. 그 자녀의 이름들이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입니다. 미디안족속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미디안족속이나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유대민족과 적대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미디안 족속은 호전적이고 당시 주변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 족속들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약 7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확기마다 약탈은 물론 온갖 핍박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도움을 간구하니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 한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 사람이 본문의 주인공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입니다.
1. 기드온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드온은 ‘벌채’ 또는 ‘벤다’는 뜻입니다.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었는데 (사사기 6:11)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받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선택되었고 큰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도 믿음의 선배들을 소개할 때 기드온을 꼽고 있습니다(히브리서 11:32). 기드온은 자신과 자기 가문을 가장 약하고 작은 자라고 소개하여 자기가 소유하고 누리는 인생의 여건보다 훨씬 겸손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미디안에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고 사명을 허락하셨고 또 미디안 사람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할 것이라고 예언해 주셨습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에 염소와 무교전병과 고기와 국물을 반석에 올려 드렸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 끝을 제물에 대어 하나님의 응답을 불로 확인시켰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더 분명한 하나님의 표적을 구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대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위는 마르게, 두 번째는 주변에는 이슬이 내리고 양털에는 안 내리게 해 주십사 하는 요구였습니다.” 기드온은 양털과 이슬을 통해 하나님의 소명을 재차 확인합니다.. 또한 바알의 단을 훼파하여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들었는데 이는 바알과 싸우는 자라는 뜻으로 그의 영적 입지를 더욱 견고케 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5대 사사로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다 죽입니다. 민족을 위해 사심없이 사명을 감당했던 기드온 이었지만 그의 70명이 넘는 아들 중에 ‘아비멜렉’이 권력을 쟁취하기위해 ‘막내아들 요담’을 제외한 나머지 배다른 형제들을 모두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있게 됩니다. 기드온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중요한것은 기드온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아주 탁월한 그 무엇을 갖추고 있는 사람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직업은 농부였습니다. 가문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중 작은 지피인 므낫세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처럼 타고난 천하장사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이 점을 높이 평가 하신 줄 압니다. 영적지도자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지금까지 기드온은 전쟁을 경험한 일도 없었습니다. 또 군사 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는 농부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고, 큰 용사, 큰 지도자, 큰 인물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사사기 6장 3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여기서, “여호와의 신”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셨다는 것은, 성령 충만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가 예수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고, 담대히 나가, 예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 해야 가능한 삶입니다. 기드온도, 성령 충만해서,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이제 기드온과 함께한 300명의 용사들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의 말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은, 숫자의 신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많은 숫자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더 많은 군대, 더 많은 무기, 또 더 많은 돈을 가진 나라만이, 세계의 패권국가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대를 보노라면 피타고라스의 예언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슴 아픈 것은 세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속화된 현대 교회도 적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인 수가 많고, 교회당이 웅장하면, 그 교회는, 훌륭한 교회이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처럼 숫자가 많은 교회가, 무언가 큰일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숫자에 대해서 예민해집니다. 숫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더 많은 숫자를 추구합니다. 한마디로, 숫자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기드온과 삼백용사’ 어떤 분은 그들이 어떻게 용사인가? 반문합니다. 사실입니다.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통해 검증된 용사들이 아닙니다. 군인으로써 준비된 모든 과정에서도 용사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결과를 놓고 평가한다면 분명 그들을 용사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방법과 일을 이루어 가심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간적인 기준에 있지 않음을 본문은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교인들의 숫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일에,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두려워서, 적당히 눈치나 보며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함께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진정으로 자신을 헌신하고자 하고, 그 일을 위해서 어떠한 손해가 있고, 희생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이름과, 그 나라를 위해서 싸우려고 결단하는 용사들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비전 2020”을 기도하며 선포할 때, 3000명의 신자와 300목장, 그리고 30개의 지교회및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를 꿈 꿀 때 300목장의 목자들이 오늘 말씀드리는 3기드온 사사와 함께한 300용사와 같기를 기도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서, 기드온이 군사를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3만 2천명이었습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십삼만 오천명(135.000명)입니다. 미디안 군사에 비하면, 지금 모병된 이스라엘 군대는 4배 넘는 적군과 싸워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심각한 열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군사가 너무 많다며 적군을 두려워하고 전쟁을 겁내는 자들은 모두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2만 2천명이 돌아갔습니다. 이제 일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돌려보냈습니다. 기드온도 대단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300명도 대단합니다. 칭찬 받기에 넉넉합니다.
끝까지 남은 300명의 사람들 (1) 이 300명은, 자긍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사기 7장 2절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긍이라는 말은, ‘자랑’이라는 말로 번역해도, 그렇게 틀린 말을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의미상으로, 더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교만’에 합당한 단어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 많은 이스라엘의 지원병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시기를 원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려,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자는 가까이 하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2) 300명은,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연약을 알기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강하신 주님 앞에 와서, 무릎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무지를 알기에, 전지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며, 내 연약함을 알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연약을 깨닫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순간이, 우리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임을 아십시오. 300명의 사람들이 적군을 바라보았다면, 자신들을 바라보았다면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위대한 선교사 바울사도는 놀라운 역설을 갈파했습니다.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다!” 내가 약할 때, 나는 참으로 강한 자입니다. 이제 300명은, 강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강력한 사람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그들은 강한 자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3) 300명은,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본문 5-6절에 보면, 그들은 철저히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만 명 가운데, 300명을 선발할 때의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먹고 있을 때, 이들의 물먹는 자세를 보고, 그들 중에서 선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가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개 같이 물을 핥는 자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아 마시는 자, 300명만을 선발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핥아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언제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적진 앞에서, 경계 태세를 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들은, 언제 어떤 위험이 닥쳐오더라도, 즉시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3.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어떻게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까? (1)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사사기 6장 6절에, “미약함이 심한지라,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했습니다. 7절에 역시,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할 때, 어려울 때, 위기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보면, 미디안이 쳐들어 왔을 때나, 모압이 쳐들어 왔을 때나,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아람이 쳐들어 왔을 때, 그 때마다 그 위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응답으로, 앗수르 산헤립의 18만 5천 대군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이,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에도,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 왕을 살려 주셨습니다.. 시편을 보면, ‘부르짖는다.’는 구절이, 42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77편 1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했고, 시편 81편 7절에 보면,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 보면, “네가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2) 승리의 비결은, 순종입니다. 300명의 용사는, 최신 핵무기나 첨단 과학 무기로 무장한 것이 아닙니다. 유격 훈련이나, 게릴라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007영화의 제임스 본드처럼, 기발한 신무기로 무장한 것도 아닙니다. 사사기 7장 19-20절 이하에 보면, 그저,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트리고, 횃불을 흔들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외친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나팔을 분 것은, 선포입니다. 승리했다는 개선가입니다. 싸움에 진 군사는,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이긴 쪽만, 나팔을 붑니다. 싸우기도 전에, 미리 나팔을 분 것은, 미리 승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할렐루야! 믿고 선포한 것입니다. 또, 항아리를 깨트린 것은,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나를 깨트려, 승리의 제물 삼겠다. 우리가 너희를, 항아리 깨트리듯 깨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횃불을 들고 흔든 것은, 어둠의 세력을 내쫓고, 광명천지를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요, 지도자 기드온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백성들에게 그렇게 명령했고, 백성들은, 기드온의 말대로, 기드온의 지시에 따라, 그렇게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7장 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심으로, 자중지란이 일어나, 죽고 도망치고 하여 이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300명이, 잘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한 그들을,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300명 용사들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누구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십니까? 각각 집으로 돌아간, 31,700명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승리를 이끌어 낸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날의 싸움은,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오늘도, 믿음과 지혜로 뭉친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만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