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주일 낮 예배 | 이찬영 | 2013-0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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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향한 나의 고백 (로마서 10:9-10) 2013. 3. 17. 주일 낮 예배 고백의 사전적 뜻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로 표현하는 것을 고백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고백이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의 의미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백의 의미는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신자가 된 우리가 ‘주님을 향해 드려야 할 고백’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저기 자신에 대해(정체성)고백합니다. 창1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간구하면서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출6:12절에 하나님께 소명과 사명을 받았던 모세는 “나는 입술이 둔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6:5절에 이사야는 환상 중에 자신이 얼마나 부정하고 오염된 인간인가를 발견하면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못 잡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고기를 많이 잡습니다. 그리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의 첫 고백은 “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죄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을 드립니다,” 아담 이후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모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고백합니다. 롬3:10-11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죄한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멸망에 빠질 금수와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하나 없는 인생입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모든 인생들은 명예, 권력, 재물이 있든 없던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구원의 관문에서 첫 번째 기준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죄로부터 왔기 때문에 죄의 고백과 용서함이 있을 때 참된 행복을 찾게 됩니다. 고백하면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케 해주시는 주님을 의지합시다. 이사야 1:18절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을 나단 선지자가 지적할 때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함에서 다윗의 위대함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부족한 자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라는 고백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인, 부부, 가족 간에만 이런 사랑의 고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랑의 고백을 받기 원하십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을 늘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질투라는 것은 사랑에서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고 이삭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삭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의 질문 앞에서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아내, 가족,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한 가지 더 빌립보서 1:20절에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합니다. 진실로 사랑을 고백했다면 사랑의 대상을 위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이심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바울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기 때문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존귀케 하는 것이 내 목표이므로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멋진 고백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성령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나와 함께해 주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남은 삶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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