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주일 낮 예배 | 이찬영 | 2013-05-02 | |||
|
|||||
서원하는 입다.(사사기 11:29.-35)2013. 4. 21. 주일 낮 예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이 자주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언약, 노아의 홍수 이후에 무지개 언약,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아브라함과의 언약, 야곱과의 언약 등입니다. 언약은 말로 맺은 약속입니다. 약속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즉 쌍방 간에 미래의 일을 의논하여 서로 지키기로 결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말로 할 때 언약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하게 됩니다. 자신과의 약속에서부터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사이에도 친구 간에 직장 동료 등등...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약속이라는 관계성 속에서 엮어 집니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 불신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상대가 감동을 받도록 지켜야 합니다. 물론 천재지변을 비롯한 부득이한 사정, 상대의 상황에 따른 변수 등이 생겨서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의외로 지키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내 자신, 이웃, 하나님과 약속을 하면서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를 입다의 서원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입다는 이스라엘에 왕정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여호수아 이후 약325년 동안 지속되었던 사사시대의 8번째 사사입니다. 그는 훌륭하고 인자한 아버지, 약속(서원)을 지키는 사람, 용감하고 리더쉽이 있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다복하지 않았습니다. 길르앗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복형제들의 구박을 받고 자랐습니다. 성년이 되어서 이복형제들과 길르앗의 유력자들을 피해 돕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입다는 리더쉽과 용력이 대단했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하우란 광야 깊숙한 곳에 위치한 돕에서 이주생활을 할 때 제법 많은 추종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주전1100년경 이스라엘은 암몬족속에게 18년에 걸친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요단 동편에 위치한 길르앗 성읍 주민들은 암몬족으로부터 더 많은 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암몬의 압제와 착취를 막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러한 요청을 받은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에게 ‘자신을 머리’로 인정하겠느냐고 협상을 합니다.
지도자가 된 입다는 먼저 암몬왕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출애굽 이후 모세의 지도 아래 차지하게 된 요단 동편지역은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300년이 넘도록 기업으로 이어 받아 살아온 곳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협상이 결렬되자 결국 암몬족속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입다는 전쟁에 출정하면서 “주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합니다. 승리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로엘에서부터 민낫까지 20개의 성읍을 탈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얻게 하고 입다가 사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입다의 서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서원을 히브리어로 ‘네데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소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면 이렇게 헌신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입다가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제일 먼저 나와 영접하는 것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습니다. 그 딸이 소고를 치며 환영합니다.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하였기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숙한 믿음의 결과인지 아니면 서원을 통해 하나님을 계약에 끌어들인 결과 어기면 벌을 받게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숙고할 장면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의 서원은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며 전심으로 섬길 대상이시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혹자는 입다가 서원한 것을 지킨 것을 가지고 믿음의 행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믿음에 의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독자 아들을 제물로 드렸고, 그것은 믿음의 행위로 여김 받았지만, 입다의 경우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그 딸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넘겨주면 승전가를 외치며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스스로 서원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지켜야 하는 것이 입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전5:2를 지키느라고 레5-7장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전5:2-6) 전5:2-6 “너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조급하게 되어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네 말수를 거의 없게 할지어다. 꿈은 일의 많음으로 인하여 오나니 어리석은 자의 음성도 말이 많음으로 알려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면 갚는 것을 미루지 말라. 그는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나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 네가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니라. 네 입으로 네 육체를 죄짓게 하지 말며, 너는 그 천사 앞에서 그것은 실수였다고 말하지 말라.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네 음성에 화내셔야 하며 네 손으로 한 일을 멸하셔야 하겠느냐?” 레위기에는 여러 제사의 규례들이 자세히 나오지만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는 규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아들인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는 모두 쫓아내라고 한 것이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신18:10) 하나님께서는 이런 서원을 하라고 입다에게 말씀한 적도 없고 그가 그 서원을 갚았다고 그 서원을 받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이유는 율법시대 이후 입다의 이 인신제사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된 서원의 인신제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시기 위해 침묵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딸들이 1년에 나흘씩 입다의 딸을 위해 애도하는 슬픈 전통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초점을 맞춰 생각할 것은 입다의 서원의 동기나 서원의 제목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입다가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 이웃, 하나님과의 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이 세대에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23:2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민수기30: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시 15:4절은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도 서원한 것이 있으면 손해되는 것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 서원은 지켜서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때 한 단계 진보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고로 입다가 서원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 이웃, 하나님과 서원한 것을 다 지켜낼 수 있는 신용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