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주일 낮 예배 | 이찬영 | 2013-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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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 버려두사! (로마서 1:28-32). 2013. 9. 29. 주일낮.
지난 6월 26일 부산일보 데스크 칼럼입니다. 부산의 한 골목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골목을 빠져 나오던 승용차가 걸어오는 남자를 치게 됩니다. 차에 받힌 남자가 서너 바퀴 구르며 쓰러졌지만,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사람은 한번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사고차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잠시 살펴보고는 그대로 가버립니다. 사고를 당한 남자는 인도 쪽으로 필사적으로 기어 나왔고 이후 40분 동안 행인 10여 명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이 남자을 구조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났으니 신고를 해 달라"는 애타는 목소리가 외면되는 장면은 고스란히 사고현장 주변 CCTV에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 집에 강도가 들면 '강도야'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불이야' 하고 외쳐야 된다고 합니다. '강도야' 하면 어떤 피해를 당할지 몰라서 신고를 안 하고, '불이야' 하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 자기 집이 화재 피해를 당할까봐 신고를 한다는 씁쓸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는 노인이 숨진 지 오래되어 발견됐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무관심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도 많이 늘어 나고 있다고 합니다.
* 범죄한 인간을 그냥 버려두신다면...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24절, 26절, 28절에 반복적으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내버려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내버려두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로 치우치는 경향성을 가지고 출생한 사람들은 점점 더 죄 깊은 상태로 빠져들게 될것입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1-13) 봉독해 드린 본문 28절 이하에 보면 21가지 죄악이 열거되어 있는데 죄악과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마귀의 형상으로 변질시켰다고 했습니다. 범죄한 인간들의 생각이 어떻습니까? 항상 악할 뿐입니다. 이런 인간은 하나님의 정의의 법정에서 이미 사형에 해당된다고 선언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은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시어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셔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아직 죄인 일 때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했지만,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범죄한 인간을 ‘내버려 두셨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저버리고 배은의 길로 멀리 나아간 인간을 향해 이제는 내가 너를 버릴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 호세아-세째 아이의 이름-로암미) 부모가 패역한 자녀를 보고 저놈을 어떻게 할까? 말은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그 중심에는 네 마음대로 행동해 보고, 세상의 쓴맛, 단맛을 체험해 보라! 그리고 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나약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와 안타까움이 숨겨진 표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버려 두신다’는 말의 이면 속에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놓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눅15장에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본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범죄한 다윗을 사랑하셔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멈추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아멘!!! 진실로 하나님이 무관심해 버린다면 인생들은 참으로 비참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생들을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산소망을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캐틸린대학의 명예 총장인 ‘로우렌스 고울드’박사는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미래에 가장 두려운 일이 폭탄이나 미사일, 핵무기 때문에 생기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 문명이 그런 식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바로 우리가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신경을 쓰려하지 않을 때, 마땅히 해야할 일 마저도 회피하려 들 때 멸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인 삶으로 생활이 바뀌어 진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주위의 영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신앙안에서 신분을 초월했고, 이해관계를 초월했습니다.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 교회를 위한 삶을 엮어 갔던 것입니다. 잠언 24:11절에서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주며, 살육 당하게 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싫어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지금까지 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직면해 보시길 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2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교회가 연합한지 5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선교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에 지경을 넓히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방관자, 구경꾼, 무관심으로 교회의 사역을 감당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무관심하게 우리들을 ‘내버려’두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해 주셨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마지막 피한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대신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랑을 가정, 직장, 민족공동체에 실천하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관심이 가장 나쁩니다. 무관심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이 없어서 냉랭해지는 시대에 사랑을 증거하는 ‘좋은이웃’의 사명을 주셨는데 이러한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감당하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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