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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22일 / 나봇의 포도원 | 운영자 | 2023-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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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열왕기상21:1-10절 개역개정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분열 왕국 시대 북이스라엘 19명의 왕 중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아합왕. 그는 정치적 역량이 뛰어났던 아버지 오므리왕의 뒤를 이었지만, 부인 이세벨의 치마폭에서 국정을 이끌게 됩니다. 어느 날 이스르엘 별궁에 머물던 아합왕의 눈에 한 포도원이 들어왔고, 자신의 별궁 정원으로 만들고 싶은 탐심이 생겼습니다. 그 포도원은 나봇의 소유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땅이었습니다. 나봇은 평범한 농부지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흥정합니다. ‘더 좋은 조건의 포도원을 주겠다. 시세보다 많은 금액으로 보상하겠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땅, 유업으로 받은 포도원을 매매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라”라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합이 탐심을 이루지 못한 분노로 괴로워하자, 그의 부인 이세벨이 왕을 위로하며 자신이 나봇의 포도원을 왕의 소유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세벨 왕비는 이웃 나라 시돈의 공주였고, 그의 아버지는 바알 신의 제사장이었으니 율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왕비 이세벨은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 증인을 세우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재판에서 거짓으로 증언하게 합니다. 왕비가 악랄하고 잔인한 면모를 알던 장로들은 명령을 어길 수 없었기에 엉터리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재판이 끝나자 사람들은 무고한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왕비는 나봇의 아들들도 다 죽여 포도원의 상속자까지 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왕에게 가서 말합니다. “나봇은 죽었습니다. 이제 포도원은 왕의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둘째, ‘나봇’의 포도원에 대한 단호한 태도입니다. 더 좋은 보상을 제안받았습니다. 그리고 최고 권력자의 제안이기에 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규례가 더 중요했습니다. 이 포도원은 영적으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 또는 성전을 모형하고, 신약에서는 성도들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 또는 교회를 모형 합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이 세상과 사단을 모형 합니다. 이 악한 세력이 빼앗아 가려는 포도원(기업)을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신앙에 타협은 없습니다. 나봇처럼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십시오. 나봇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누명을 쓰고, 자신과 가족들까지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영암 김응조 목사님은 ‘나봇’을 ‘스데반’이라고 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나봇의 이름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여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허다한 믿음의 선진들은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탐심을 쫓은 아합과 이세벨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알고 계십니다. 최후의 승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주목하십시오.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쁨을 택하는 좋은이웃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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